본문 바로가기
로나 번(수호천사)

수호천사 - 2

by 제이미잼잼 2023. 3. 28.
728x90

 

번역 : 류시화​

 

토요일 아침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은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가는 일이었다. 더블린 시 중심부에 위치한 무어가는 분주한 재래시장으로, 길 양쪽의 가판에서 아주머니들이 서로 자기 물건을 사 가라고 강한 더블린 억양으로 목청을 높였다. 나는 어머니가 과일과 채소를 고르고 있는 동안 쇼핑 수레를 앞에서 끌며 따라다녔다.

어느 토요일, 우리가 무어가로 접어드는 순간 한 천사가 내 어깨를 잡아당기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가 네 앞에서걸어가시게 해. 아마 엄마는 눈치채지 못하실 거야.”

 

나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으며 어머니는 계속 걸어가면서 가판대위의 과일과 채소들을 살폈다. 나는 천사의 말대로 그곳에 서서 무어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풍경이 바뀌었다. 갑자기 거리가 황금색 궁전처럼 변했다. 모든 것이 황금색이었다. 심지어 사람들까지도. 그러더니 색깔이 변하면서 다른 색들이 나타났다. 생동감 넘치는 더 밝은 색깔들, 평상시보다 휠씬 밝고 생생한 색깔들이, 이 색깔들은 에너지로 가득한 물결처럼 과일과 채소들과 꽃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 물결들은 거리의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색깔 공들이 되어 거리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판대 위에서, 심지어 사람들 위에서도 튀어 올랐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못하는 듯했다.

거리는 사람들로만 가득한 게 아니라 천사들로도 가득했다. 평소보다 휠씬 많았다. 어떤 천사들은 과일과 채소를 파는 여인들과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을 돕느라 그들도 분주했다. 천사들이 장사하는 여인들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노래도 부르고있었다. 마치 자신들 주위에서 돌아가는 거리의 생활에 박자를 맞추어 콧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전에도 무어 가를 여러 번 갔었지만 이날 같은 광경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특별히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연출되었거나, 혹은 날마다 그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게 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혼잡하지만 활기 넘치는 풍경에 나는 그날 너무나 흥분되었다.

 

두세 개의 노점을 지나쳐 앞서 가던 어머니가 문득 내가 옆에없음을 알아차렸다.

로나, 정신 차려, 얼른 수레를 끌고 이리로 와.”

나는 모든 풍경이 다시 평소대로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 옆에 서 있는데, 천사들이 내 귀에 속삭였다.

과일 파는 저 여자를잘 지켜봐.”

 

나는 시키는 대로 했고, 그 여자의 수호천사가 그녀 바로 뒤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수호천사는 그녀와 닮았으며, 옷차림도 그녀와 똑같았다. 빛으로 가득한 수호천사가 멋진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를 보자 윙크를 했다. 어머니는 그 여자에게서 사과, , 그리고 바나나를 샀다. 여자가 갈색 종이봉지에 과일들을 담을 때그녀의 수호천사가 손가락을 흔드는 것이 내 주의를 끌었다.

그 여자가 나쁜 사과들을 어머니의 봉지 속에 눈치 못 채게 섞는것이 보였다. 그녀의 수호천사가 그녀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만 큰 소리로 킥킥거리며 웃고 말았다. 여자는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내가 알아차린 것을 그녀도 아는 눈치였다. 그때 갑자기 종이봉지 밑이 터지면서 과일들이 사방으로 굴러 떨어졌다. 여자는 과일들을 집으려고 허둥대다가 그 중 사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썩은 사과였다! 나는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음을 안다. 그녀의 수호천사와 나의 수호천사가 일어나게 만든 것이었다. 나는 아까보다 더 크게 웃음이 났다.

 

어머니가 썩은 사과를 알아차리고 말했다.

나한테 못 먹는과일을 주려는 건 아니겠죠?”

여자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새 종이봉지에 과일들을 채워 넣었다. 그러면서 찔리는 눈빛으로 나를 흘낏거렸다. 어머니가 과일 값을 치렀고, 나는 과일 봉지를 수레에 넣었다. 어머니와 함께 걸어가는데 그 여자가 강한 더블린 억양으로 소리쳐 불렀다.

이봐요. 부인!”

어머니가 뒤를 돌아보자 여자가 종이봉지 하나를 더 내밀었다.

과일을 몇 개 더넣었으니 아이들에게 가져다줘요!”

그녀의 수호천사가 옆에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수호천사의 말을 들은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무어가에 수없이 갔었다. 어려서도 갔고 어른이 된 후에도 갔다. 하지만 그날만큼 생생하게모든 것이 살아 있었던 적은 없었다. 내가 어떤 것을 볼 수 없다고 해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천사들은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나에게 항상 보여 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만약 그랬다가는 나한테는 너무도벅찼을 것이고 나는 일상생활을 사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전혀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