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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 캐논

우주의 신비 3 ~ 나의 진화 2

by 제이미잼잼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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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제는 돌로레스 캐논 Dolores Cannon 의 The Convoluted Universe Book 3 입니다.

(전체 흐름 - https://jamie-jam.tistory.com/93

 

어떤 이들이 환생에 대한 개념을 처음 접할 때의 반응은 여전히 놀랍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들은 말합니다, “내가 이전에도 살았었다고요? 이번이 나의 첫 번째 삶이 아닙니까?”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이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그들의 마음을 확장시키는 일입니다. 사실상 그들이 수 백 번의 삶을 살았고, 상상할 수 있는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모든 형태의 삶을 경험했다는 건 제쳐두고라도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전생에서 반대의 성이었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내가 여자였을 리가 없어요! 나는 항상 남자였다고요!" 내가 이러한 초심자 고객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잠재의식은 그들에게 부드럽게 대해줍니다. 보통 그들에게는 전생들 중 단순하고 일상적인 삶을 보여주는데, 그것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단순해 보이는 삶이지만 그러한 것도 그들에게 해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같은 주에 두 명의 흑인이 연속으로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현재의 삶 바로 직전의 삶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백인의 손인데요. 내가 백인 일리가 없어요! 그리고 내 여자 친구도 백인이에요!" 두 번째 남자는 자신이 고대 로마시대 경기장에서 싸우고 있는 검투사라는 걸 보았습니다. 그는 그 일이 싫었고 멈추고 싶었지만 자신이 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모든 죽음들에 지쳐있었습니다. 경기장에서 그가 가장 많이 죽인 이들이 누구일까요? 스포츠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흑인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환생의 법칙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그 지혜에 따라 그는 흑인으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환생의 개념이 한번 이해되기 시작하면 어떤 편견이나 판단은 있을 수없습니다. 당신이 편견을 가지고 판단하던 애초의 그 대상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전생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은 진정으로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육체가 아닙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이고 하나이며 오직 '진정한' 당신은 자신의 영혼(spirit)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고 육체에서 육체로 옮겨 다니며 모험을 하고 교훈을 배웁니다. 각 삶에서 당신은 새로운 정장을 입습니다(당신의 육체입니다), 원한다면 다음 연극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기 위해 새로운 의상을 입습니다. 그러나 모든 옷처럼, 아무리 좋아하든 계속 입고 싶어 하든 상관없이 그것은 결국에는 닳게 됩니다. 그 시점에서 그 옷이나 의상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것을 얻습니다. 그러고는 당신이 구성이나 대본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새로운 연극에서 다음 역할을 시작합니다.

​지구는 단지 당신이 다니기로 선택한 학교일 뿐입니다. 각 삶은 배워야 할 교훈이 많은 하나의 학급일 뿐입니다. 지금의 단계를 완성하기 전에는 다음 학급으로 건너갈 수 없습니다. 여기는 한 학급이라도 건너 뛸 수 없는 학교이지만, 자신의 학급을 반복해서 다닐 수는 있습니다. 아주 긴 시간 혹은 짧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배움을 올바르게 획득할 때까지 계속 다니게 됩니다. 현재의 삶에서 졸업을 못한다면, 같은 문제와 교훈을 가지고 마침내 그 교훈을 이해하고 배울 때까지 다음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쉽거나 혹은 쉽지 않을 테지만 그리고 나서야 다음 교훈이나 등급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 일은 당신이 마침내 졸업해서, 영적 영역에서 머무르거나 신에게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자신이 보낸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 말의 의미는 삶에서 다른 이들에게 한 일은 반드시 그에 상응한 대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임승차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한 일은 스스로 그 값을 치를 것입니다. 나는 3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전생을 통한 치유 세션을 진행하면서 그 같은 경우를 반복해서 목격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전의 삶에서 무엇을 행했던, 현재의 삶에서 그것이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전의 삶에서 자신이 잘못 대했던 바로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항상 자신의 실수를 직면해야 합니다. 단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만약 지금의 삶에서 하고 있는 일이 다시 자신들을 쫓아다니게 된다는 걸 이해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되돌리려 할 것입니다.

 

이는 우주의 법칙입니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 흔히 카르마라 불리는 균형의 법칙입니다. 이는 내가 고객과의 치유의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나도 힘든 “짐과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 이들에게 그들 중 어떤 것은 전생에서, 어떤 것은 지금의 삶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몸을 병들게 합니다. 그중 많은 것들이 카르마에 기인하고 있으며, 때로는 많은 전생의 삶들에서 만난 동일한 사람들에 의한 것입니다. 그들은 패턴에 빠진 것이며, 그 패턴은 아무런 유용한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현재에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시 돌아와 그 문제와 같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걸 알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 설명 자체가 어떤 이들에게는 충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요! 이 문제를 빨리 없애고 싶고 그 사람들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다루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나는 잠재의식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돌아온 이유를 안다면 더 쉬워지지 않겠어요?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연결성을 기억한다면요.”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만약 그 해답을 안다면 테스트가 아니겠지요.”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오기 전, 영적 영역에 있을 때 방금 떠나온 삶들을 검토하면서 그 삶과 관련된 영혼들과 의논을 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계약을 했습니다. “이봐, 우리가 지난번에 그리 잘 하지 못한 거 같아. 한 번 더 시도해 볼까? 이번에는 네가 남편이 되고 내가 아내가 되는 거야. 아마 그렇게 해보면 잘 될지 몰라.” 그리고 다시 돌아와 같은 사람들과 다시 한번 노력해 보겠다는 결정을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원하는 데로 역할을 바꿀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러한 패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많은 경우 같은 패턴에 휘말리게 되어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정말 잘 지낼 수가 없어요.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계속 어긋나요. 그들과 함께 산다는 게 너무 끔찍합니다. 당신은 나의 상황을 잘 모를 거예요.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요.”

 

여전히 그 일들에 대한 짐과 걱정거리가 지속되는 한 문제는 해결되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얼굴을 직접 맞대고 이야기하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럴 경우, 나는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해 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어요. 나도 노력하고 당신도 노력했지만 여전히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우리가 계약을 취소하는 것이 어떨까요? 당신은 당신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가겠습니다. 우리는 이 어려움을 더 이상 겪을 필요가 없어요. 나는 사랑으로 당신을 놓아주겠습니다."그러고는 두 사람이 계약서를 찢어버리는 걸 심상화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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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에도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악은 없으며, 악마도, 지옥도 없습니다. 배워야 할 교훈만 있습니다. 단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에너지만 있습니다. 우리가 악이라고 인지하는 건 단지 인간이 에너지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책임을 지는 대신에 “악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악이 나를 점령해서 끔찍한 짓을 하게끔 만든 거야.. 등등.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등등.” 우리 모두의 삶에서는 나쁘고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현상이 삶을 지칭하는 것으로 "살아있다"라는 의미입니다. 힘든 환경에서 어떤 것이라도 배운 게 있습니까? 단지 하나라도 배웠다면 그것이 그 힘든 상황의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어떠한 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자신의 불행으로 인해 다른 이들을 비난했다면, 당신이 그 고통이 알려주려는 걸 이해할 때까지 부정적인 경험을 지속할 것입니다.

 

마침내 배우고 이해했다면 당신은 자유로워집니다. 그것이 우리가 전생의 삶들을 탐험하는 가치의 아름다움입니다. 비록 현재의 상황들은 불공정해 보이지만 전생의 삶들을 살펴본다면 그 해답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과거의 행위로 축적한 카르마를 다시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앞에서 언급한, 자신이 보낸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걸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었다고 해서 우리의 빚을 갚아야 하는 채무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은 너무 쉬웠을 것입니다. 그 명판은 빚이 청산되기 까지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깨끗한 새 명판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지만 가장 빠르게 카르마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나에게 상처를 줬기 때문에 당신에게 다시 상처를 주겠습니다! 이것이 카르마의 바퀴를 계속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가장 빠른 길은 용서입니다. 그 일이 쉽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상처는 매우 깊어 그냥 내려놓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러나 어떠한 의구심도 없이 진심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이 또한 삶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카르마를 놓아주고, 반복해서 그것을 갚기 위해 돌아오는 힘든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용서를 진심으로 한다면 마법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더 이상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당신을 화나게 하는 버튼을 누르지 못합니다. 어떻든 그런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게임과 같습니다; 그들은 눌러서 반응을 이끌어낼 버튼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실질적인 용서가 주어진다면(그리고 기억하세요, 그 일을 의식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당신은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고 일들은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럼 다른 대안은 무엇일까요? 카르마의 바퀴를 반복해서 계속 돌리는 것일까요?

 

한 번은 몸의 모든 부분이 암에 걸려 심하게 아팠던 고객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치유 작업을 하면서 발견한 건 종종 암은 억압받은 분노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면에 분노를 품고서(특별히 배와 장 기관의 암일 경우) 표현을 못 할 경우, 그것들이 나갈 출구를 못 찾으면 뒤틀리면서 몸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의사가 육체의 한 부분에 있는 암을 제거할 때마다 다른 부분에서 계속 재발하는 것입니다. 결코 끝나지 않는 회전처럼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것에 대해 화가 나있습니까?” 대부분 외칩니다, “그럼요. 전 아내에게요! 그녀를 증오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내가 만날 수 없게 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에게 용서와 분노를 내려놓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내가 용서한다면 그녀가 이기는 겁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합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당신이 죽는다면, 그녀가 이기는 거예요.”

간단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카르마의 바퀴가 계속 굴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밤 TV 앞에 앉아 광고 시간에 제출된 원고를 읽고 있을 때 뜻밖의 진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들 중 한 사람이 쓴 글이었는데, 그는 전혀 다른 맥락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추론과 관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머리에 꺼져있던 전구가 켜지면서 마치 나에게 주어진 혹은 스스로 찾아낸 많은 정보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갑자기 조각이 맞춰지면서, 희한한 방식으로 들어맞는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 정보들은 쭉 그 자리에 있어왔지만 내가 단지 알맞은 맥락으로 읽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의 치유 기술 중 하나는 고객을 치유하기 위해 잠재의식과 작업을 해서 그 병과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원인만 파악하게 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깊은 최면 동안 의식의 간섭이 사라진다면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건 오직 그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일은 어떤 병에든 효과가 있었으며 나의 사무실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걸 목격해왔습니다. 대화하고 있는 “잠재의식”에게 요청하곤 했지만 그 부분은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는 잠재의식과 같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훨씬 크고 더 강력한 부분으로, 내가 그 사람의 고차원 자아, 고차원 의식, 대령(Oversoul)과 교류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든 해답을 알고 있으며 적절하다면 그들에게서 정보와 치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잠재의식”이라고 부르고 요청하면 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대화할 때 그것은 스스로를 단일체가 아닌 “우리”라고 언급합니다. 그것은 항상 전 세계의 모든 고객들과 작업할 때 동일하게 반응해왔습니다.

 

그제야 모든 조각들이 맞춰졌기 때문에, 나는 세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O. T. Bonnett 박사는 마음이 어떻게 우리의 육체를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의 책인 “왜 치유가 되는가(Why Healing Happens)”에서 치유가 필요할 때 육체의 세포들에게, 그들의 협조를 구하며 대화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고차원의 권위(우리의 인격체)가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언급할 때는 항상 “우리”라고 해야 합니다. 그 세포들은 육체의 다양한 부분들을 돌보는 자신들의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분이 자신들을 인식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을 잡았을 때 그들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하면 우리는 일종의 “신의 목소리(voice of God)”가 되면서 그들의 관심을 우리에게 돌릴 수 있습니다.

 

내가 읽고 있던 원고에서 어떤 이는, 우리는 자신들을 육체, 하나의 단위라고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는 수조의 개별적인 세포들을 담고 있는 용기일 뿐입니다. 그러한 세포들이 우리 육체 안의 모든 장기와 조직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이 맡은 일이 있고 서로 조화와 균형 속에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 세계에 불균형을 초래하고 질병을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말 그대로 우리는 단지 존재들의 거대한 집단을 품고 있는 용기라고 말했습니다. 세포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하는 모든 일인 생각하고 소화하고 재생산하고 배설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수조의 개별적인 존재들의 거대한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나”라고 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우리”라고 칭해야 합니다.

 

그때가 갑자기 무엇인가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모든 내용이 익숙하게 들렸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세포들과 대화할 때 대명사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고, 잠재의식 혹은 고차원 의식은 스스로를 “우리”라고 칭합니다. 그것이 또한 더 큰 의식의 부분이라는 걸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믿고 있으며, 나중에 나올 신과 근원에 대한 챕터는 그에 대해 확실히 설명해 줄 것입니다.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훨씬 더 큰 조직의 부분들이며 각 부분은 생존하기 위해 다른 부분에 의존해야 합니다.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는 강연에서, 우리는 단지 신(God)의 육체의 세포들이라는 걸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것이 정보의 축적과 대화에 있다는 걸 줄곧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모든 가능한 교환과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셀 수없이 많은 삶들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들은 내용은 모든 교훈을 다 배우고 “졸업”했을 때 우리는 그동안 축적한 정보들을 신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은 호기심이 많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빛의 개별적인 불꽃으로 처음에 창조된 이유입니다. 신은 배우고 싶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창조되어 가능한 모든 걸 배우고 그것을 신에게 다시 가져오도록 보내졌습니다. 이 책에서 그러한 내용을 실었을 때, 나는 이성의 이해를 넘어서는 사랑이 있는 신과 함께 있다는 것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고 만족했습니다. 결코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의 창조의 목적이 그러했기 때문에 떠나야 했습니다. 이 삶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근원이 어딘지 결코 이해하지 못한 채로, 분리와 외로움을 담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함께 할 때에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분리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으며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 거기에 머물 수 있을 때만이 우리가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육체 안에서도 대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세포들은 서로 교류하고 관계하고 있으며 비록 그들은 지속적으로 죽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전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분리되었다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세포들과 DNA는 지속적으로 정보를 우리의 두뇌로 보내면서 우리 몸의 주요 부분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포들이 우리를 자신들의 신(God)으로 인식하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고 우리 몸의 가장 높은 부분으로 보낸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수 없는 삶들을 통해 하는 일과 동일합니다: 정보를 축적하고 신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나는 만약 그 세포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걸(만약 인식하고 있다면) 설명하는 건 내가 신의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려 하면서 고객들과 작업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아마도 그 세포들은 우리를 자신들의 육체와 두뇌 밖에 있는 거대하고 모호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볼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강력하고(우리는 세포들을 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비한 존재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장기나 다른 부분에서의 자신들의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그들도 죽는다는 것을 모른 채로. 그 개별적인 세포들은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들이 장기(심장/간/신장..)의 부분이라는 걸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또한 수많은 부분들(생명들/인격체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더 커다란 영혼의 한 부분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설명이나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을 개별적으로 보고 더 큰 영혼과 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세포와 다른 점보다는 유사점이 더 많다고 여깁니다. 단지 새로운 개념을 검토하고 수용하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우주의 신비-2(ConvolutedUniverse- Book Two)에는 지구 또한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세포들)로부터 축적한 정보들의 창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태양 또한 지구뿐만 아니라 모든 행성들인 달, 소행성들, 위성들로부터 정보들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다른 태양계의 태양들도 자신들의 다양한 별 시스템들에게서 정보들을 축적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주는 전체 별 시스템들에게서 정보들을 축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지식과 정보를 저장한다는 내용은 나에게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소우주(얼마나 작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에서 대우주(얼마나 거대할지도 아무도 모릅니다)의 범위를 아우르는 것입니다. 오직 신과 근원(Source)만이 그 모든 저장된 정보들의 목적을 알고 있을 텐데, 아마도 다른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려는 것일까요? 우리는 다른 책들에서 환생의 주기, 재탄생 혹은 부활이 단지 인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걸 실었습니다. 다른 챕터에서 나는 그것이 어떻게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그 모든 것은 에너지이고 그래서 모든 것은 살아있습니다)에게 적용되는지를 밝힐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별들도 죽음과 재탄생의 주기를 거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별 이나 태양도 또한 유한한 삶을 살며 그것의 에너지(혹은 영혼?)가 나가면서 초신성(supernova)으로 들어가 장관의 폭발 속에서 죽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지요?” 들은 답은 그 에너지는 새로운 별들을 창조하기 위해 다시 사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주는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지만 심지어 그것도 유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주는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계속 확장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시작했던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폭발하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잃고 죽습니다. 나는, 그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대답은 “그리고 나서는 그 모든 과정이 다시 시작됩니다. 모두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지속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주기를 돌고, 재생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 각자의 매일의 삶(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삶 대신) 속으로 가져와 실제적으로 활용한다면 그 의미는 우리의 마음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부여한 한계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원하는 건 어떤 것이든 창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치유할 수 있으며 모든 걸 가질 수 있습니다. 단지 해야 할 일은 우리 스스로 혹은 다른 이들이 부여한 한계를 제거하는 것뿐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고 신뢰하세요. 우리가 허용하지 않는 한 누구도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오래전 과거에는 일반화되었었던 힘을 다시 요구해야 할 시간입니다. 세상은 지금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우리는 그에 따라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힘(정신적인 것이나 그 밖의 것들)이 우리에게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지구에서는 그러한 힘들이 일상적인 것이 되고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깨어나고 있는 이유입니다.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이해한 것들(지금까지)입니다. 아마도 여러분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탐험해 보길 바랍니다.

 

우주의 신비-3 page 12 ~ 21 by 돌로레스 캐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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