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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 캐논

우주의 신비 3 ~ 나의 진화 1

by 제이미잼잼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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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제는 돌로레스 캐논 Dolores Cannon 의 The Convoluted Universe Book 3 입니다.

(전체 흐름 - https://jamie-jam.tistory.com/93

 

섹션 1 : 탐험

소개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을 때쯤이면 그동안 14권의 책을 내는 동안 내가 정보를 얻는 방식과 나의 글들에 익숙해졌을 즘으로 여겨지지만, 이번 책이 처음인 분들을 위해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하겠습니다. 나는 채널링을 하지 않으며, 과거 생들에 대한 최면 치유사(hypnotherapist)이며 정보는 수많은 고객들의 치유 세션을 통해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치유에 있어 내가 중점을 두는 점은 관련된 과거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정보에 대한 리포터, 조사원, 탐구 가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내가 모든 지식의 근원에 완전히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나의 책들은 잃어버린, 잊힌 혹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일은 나에게 흥미롭고 새로운 정보들을 현재로 가져온다는 엄청난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는 30년 동안 최면에 대한 나만의 독특한 방법들을 개발해왔습니다. 내가 작업하는 고객의 “잠재의식(subconscious)”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알아냈습니다. 이는 정신과 의사들이 정의하는, 마음의 좀 더 유아적인 부분을 가리키는 그 부분이 아닙니다. 내가 대화하고 있는 존재에 대해 정의해달라고 요청받을 때면 나는 그것을 일종의 대 영혼(Oversoul), 고차원 의식(HigherConsciousness), 고차원 자아(Higher Self)라고 대답합니다. 나는 그 대상이 프로이트가 우주의식(Universal Mind)이라고 설명했던 것과 같다고 믿습니다. 대부분의 최면 수업에서는 "그렇다"라는 하나의 손가락을, "아니다"라는 다른 손가락을 들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느리고 지루할 뿐입니다. 그 부분과 적극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데 왜 그런 방식을 택하겠습니까? 내가 개발해낸 방법은, 그러한 엄청나게 강력한 힘에 쉽게 접근하는 것으로,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단지 정확한 질문만 생각해 내면 됩니다.

 

나는 그 대상을 “그들”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항상 스스로를 “우리”라고 칭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원한다면 자신들을 “잠재의식”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했지만, 어떻게 부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와 작업하는 것에 동의했고 내가 “잠재의식”이라고 부르면 응답합니다. 또한 내가 작업하는 동안 인간의 이러한 놀랍고 자비로운 부분은 지속적으로 물질적 육체를 치유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급에서 “치유”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대신에 “완화(relief)”라는 단어를 쓰기를 바랐습니다만,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는 상관없이 그 결과는 동일합니다.

고객들은 단지 하나의 세션 동안에도 기적적인 방법으로 즉시 치유되곤 했습니다. 나는 그러한 경우들을 다른 책에 기록해두었습니다. “그들”에게서 그것은 “미래의 치유방식”이기 때문에, 나의 방법을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은 엄청나게 강력해서 육체는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과정을 가르칠 수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내가 혼자 개발한 걸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주겠습니까? 그것을 세부 사항으로 나누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능할까요? 나의 첫 번째 시도는 2002년 뉴멕시코, 타오에서 10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첫 번째 수업을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나는“기니피그(Guinea Pigs)” 수업이라 불렀는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기니피그’라 부르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항상 가장 첫 번째가 될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웃으면서 그들 이름 뒤에 기니피그의 앞 두 자를 붙이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기술에 대해 완전히 터득하면서 전 세계를 걸쳐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수백에 달하는 학생들의 명부는 다음 사이트 www.ozarkmt.com 에올라와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 방법이 효과가 있고 놀라운 결과들을 얻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으며, 스승으로써의 가장 큰 만족은 지식의 전달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치유 세션을 하는 나의 가장 큰 목적은 고객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표면으로 드러났으며 이 책에 그에 대한 내용들을 적었습니다. 이 책은 나의 모험에 대한 14번째 책이며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은 책이 발간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 정보들은 내가 작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넘쳐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새롭게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께 명확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나는 채널러가 아니며 심령술사도 아닙니다. 나는 최면요법 치유사로써 나의 정보는 “그들”에게서 나옵니다. 나는 단지 그것들을 모아 정렬하고 조각 그림처럼 끼워 맞출 뿐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는 않습니다. 이제, 우주의 신비(Convoluted Univers) 책들의 시리즈 중 최근 책에 대해 들어가 보겠습니다.

 

챕터 1 : 나의 진화

 

 최면 세션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전체 장이 진화하고 변화하는 작업들을 통해 돌아 보는 일은 조금 낯설기는 합니다. 1968년에 환생이라는 장에 내가 던져졌을 때(어느 정도는 부드럽게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운 모험이었습니다. 나는 내 마음에서 다시는 닫히지 않을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치유사에 대한 어떠한 책이나 지침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나만의 규칙과 기술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나았다는 것을 압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최면 요법에 있어, 하나의 정확한 방법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지 말고, 이전에 오랫동안 유지해온 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그 당시 모든 이들이 다른 이들에게 받은,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받은 기법으로만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수받은 방법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그 규칙을 바꿀 수 있고 자신들만의 방식을 개발할 수 있다는 걸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고정적인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새롭고 흥미로운 것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로 가서 역사를 체험하는 시간 여행을 발견했으며, 무엇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를 몰랐기 때문에 마음의 능력에 대한 모험을 선택하고 최면을 통해 무엇이 가능한지를 알아냈습니다.

 물론 내가 그러한 발견을 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으며 여전히 최면에 대한 그리고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한 방법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1979년에 그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나의 고객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하고, 그 오래전 시대에 살아가는 생활을 발견하는 일이 너무 좋았습니다. 나는 조사원이며 리포터로써 역사를 좋아합니다. 조사원으로써 그 시대를 방문하고 질문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거기서 나의 수 백 명의 고객들을 통해 수집한 정보로 첫 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그 당시 초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환생의 개념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단순했지만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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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한 번 이상의 삶을 산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은 놀랍고 삶이 바뀔만한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받은 세뇌로 인해 전통에서 벗어나 의문을 가지는 건 아주 용감한 영혼이었습니다. 교회가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문을 품거나, 논의를 하는 일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없는 내용은 알 필요가 없다. 죽은 후에 모든 해답을 얻을 것이다. 아마도 저 위에는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득점 카드 같은 걸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해답을 얻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리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점점 더 지금까지 자신들이 믿어왔던 것 이상의 어떤 것이 저 밖에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리고 그 답은 바로 탐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환생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나는 개신교(대부분 남부 뱁티스트였던)의 영향 아래에서 성장하고 주일학교 선생이었으며 성가대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무엇인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은 성경 안에서나 목사님에게서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일요일 신자들 사이에 앉아서 설교를 들을 때마다 나는 궁금함에 손을 들어 목사님이 말한 내용에 의문을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 의미는 이것 혹은 저것일 수도 있는데 목사님이 어떻게 아시는 거지요?” 물론 예의를 아는 착한 크리스천 소녀인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그만두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더 이상 믿지 않는 신조를 가르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형이상학에 빠져들었지만 그에 대한 나의 믿음을 드러내어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드러내어 비웃음을 당하기에는 그 내용들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통적인 교회를 다니는 걸 그만두고 종교에 대한 “실질적인” 의미, 종교에 반대되는 영성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을 잃었고 위의 두 단어의 중요한 차이점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전생 세션 치유를 완전한 직업으로 시작했을 때, 나는 자신이 전생에 대한 모든 이론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알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것은 삶을 살고, 최선을 다하고, 교훈을 배우고 그리고 죽은 후 자기 삶을 평가하는 단순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양한 영혼들과 계약을 하고 다시 육체의 여정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영혼은 지구 학교에서 점진적으로 학년을 올라가면서, 마침내는 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졸업하게 됩니다. 그 일은 너무나도 논리적으로 들어맞아 그러한 개념을 받아들이고 전생에서 온 문제를 바탕으로 고객을 치유하는 데 있어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 책을 쓰는 초기 때 나는 전생을 직선상의 시간 패턴으로 따라갔었습니다. 여전히 아기가 걸음마를 하듯이 아주 천천히 진행했으며 – 시간과 특정한 날짜를 기준으로 전생의 삶들을 순서대로 살펴보는 - 그렇게 해야만 내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기의 고객들 중 한 명은 전생으로 퇴행했을 때 놀라운 몽유병적 증상으로 완전히 다른 인격체가 되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이 몰입하고 있는 삶의 방식의 문화적, 신화적인 것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자세하게 알려 주었을 때, 그것이 역사를 탐험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점차적으로 100년 단위로 퇴행시키면서 25개의 다른 삶들을 거치도록 했습니다. 각 인격들은 완전히 달랐으며 내가 그녀에게 특정 연도로 가달라고 요청하면 그녀는 그 시기의 인격과 완전히 동일해졌습니다. 그들의 서로 다른 목소리, 태도와 몸의 움직임 등에 익숙해졌고 그것이 역사를 탐험할 수 있는 놀라운 방법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천직이고 계속해서 기록해 나갈 것임을 예상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초기 시대(1980년대)의 그녀의 전생들을 바탕으로 한 두 권, 예수와 에세네파 그리고 히로시마를 기억하는 영혼(Jesus and the Essenes 와 A Soul Remembers Hiroshima)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알려주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 때문에 마침내는 다른 형태의 생명들에 대해서도 책을 쓰게 되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이후로 나의 작업은 너무 나도 많은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갔습니다.

 

전생들을 탐구해 나갈 때 새로운 이론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이 나의 믿음체계를 흔드는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나를 흔들었던 첫 번째 것은 각인(imprinting)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 Keepers of the Garden and Between Death and Life 책에서 소개 - 이 개념은 우리는 사실상 그렇게 아주아주 많은 삶들을 살아올 필요 없이, 다른 사람들의 삶들에 대한 기억을 자신에게 각인(혹은 덮어 씌우거나:overlaid)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그 인격이 자신이 살게 될 삶이 이전과 많이 다르거나 그 삶을 살아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 배경적 경험이 없을 때 행해집니다. 그러한 삶들의 기억들은 환생(영적 가이드와 마스터들의 도움과 함께) 하기 이전에 영적인 영역에 있는 거대한 도서관에서 가져와 우리 자신의 영혼의 기억에 덮어 씌우거나 각인을 합니다.

 

그때 나는 물었습니다, “그러면 최면에서 그 사람이 알려주는 전생이 직접 경험한 것인지 혹은 각인된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들은 답은 이렇습니다,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모든 각인(감정들과 다른 모든 것)들은 덮어 씌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격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 차이점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평범하지 않은 개념을 접했을 때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고 꽤 오랫동안 고민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나의 믿음체계가 도전을 받게 된다면 이 분야에서 정말 계속하고 싶어 하게 될까? 나는 삶과 죽음, 환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순서대로)에 대한 나의 개념이 편했고 그동안 준비해온 것을 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새로운 개념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살펴보고 깨달았습니다. 최소한 열린 마음으로 검토라도 해보지 않는다면 교회의 신조보다 나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받아들이고 의문을 가지지 마라”

 

그래서 나는 그 새로운 개념과 또 다른 개념들(평행 현실 혹은 겹치는 삶-overlapping lives)에 대해 좀 더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고, 점진적으로 지혜들이 나의 닫힌 마음으로 스며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열고 동시에 새로운 개념을 연구하는 건 놀라운 모험입니다. 우리가 커 오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들에는 그러한 것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번 마음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갈 길은 없습니다. 자신이 알게 된 것을 물릴 수 없으며 안 보이게 카펫 안으로 밀어 넣어 버릴 수도 없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은 후에는 그 모든 걸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그들”이 나에게 한 일에 대한 지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의 흥미를 돋우어 줄 수 있는 수준에서 아주 작은 조각 정보들을 천천히 아기에게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이듯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음 정보를 주기 전에 그 작은 각 정보들을 내가 소화하도록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며, “그들”은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벽에 부딪힐 때마다 일을 멈추고는, “그게 이해가 안 돼요!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요! 왜 그냥 원래 방식으로 돌아가면 안 되지요? 나는 시간 여행과 역사 공부만으로도 충분했단 말이에요!”라고 외쳤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명백히 그들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직 그 방법만이 내가 조금씩 이해하면서 그들을 나의 작업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는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전생 치유를 위해 나에게 오는 거의 모든 고객들은 같은 질문을 합니다, “나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는 항상 그들에게 만약 그 질문이 “적절” 하다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잠재의식(내가 함께 작업하고 있는)은 질문하는 이들이 다룰 수 있는 그 이상의 정보는 결코 주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 지금의 삶과 180도 다른 것일 때, 너무 빠르게 접한다면 이렇게 대응할지 모릅니다, “아, 안돼! 그건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어!” 그러고는 삶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자학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잠재의식(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은, “그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한 예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알고 싶어 했던 남성이 있었습니다. 세션을 진행하는 동안 내가 그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잠재의식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말해줄 수 없습니다. 아, 그럴 수 있었으면!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걸 보고 있는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그가 당신의 20년 전의 모습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아기를 데리고 풀코스 음식을 먹으러 가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유를, 다음에는 부드러운 시리얼, 그리고 으깬 채소…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 고체성 음식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비유였으며, 내가 시간을 거쳐 얼마나 여기까지 왔는지를 이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안내가 없다면 얼마나 쉽게“아기”가 압도당해서 용기가 꺾이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지혜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신비(Convoluted Universe) 시리즈 책들을 통해 그들은 지속적으로 나의 마음을 확장시켜 오고 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배울 것이, 더 이상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들은 나에게 생각해야만 할 새로운 개념과 이론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그것은 너무 새로워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들이 보여주려는 삶의 전체적인 윤곽에 맞춰보려 노력하고 깊이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결국은 이러한 좀 더 어려운 개념들에 대해 준비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고 나는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그 내용을 책에 쓰거나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어요?” 나의 질문은 계속되었으며, 최소한 그것으로 인해 나의 작업이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끊임없는 새로운 개념으로 나의 마음이 계속 확장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역사를 탐구하고 그에 관련된 사건을 기록하던 초기의 단순했던 시절로 돌아갔으면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을 계속 고집했더라면 엄청난 양의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다른 방식과 다른 영역을 탐험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신비-3 page 1~ 12 by 돌로레스 캐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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